일상/생각의 단편

도종환 - 시간의 단풍

별의먼지 2021. 11. 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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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 시간의 단풍

시간의 단풍

도종환

 

한 해에 두 번 꽃 피는 아침 단풍 지는 저녁 두 번밖에

주목받지 못하는 나무 많지 그 나무가 남긴 몇 개의 열매

여름날의 그늘도 그리 크게 기억하지 않지만 그들끼리 손잡고

도심 한 켠 푸르름으로 채우고 섰거나 숲의 한구석이 되어 있는

나무 많지 말없이 이 세상 한 모퉁이를 지키다 가는 나무들 많지

 

살면서 꽃 피던 짧은 날과 쓸쓸히 세상을 등지던 그 며칠밖에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 바쁘다고 말하지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장례식장 문을 나서며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말하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벌판에 미안함도 면목 없음도

묻어두고 잠시 지는 잎을 바라보지 그 기억도 곧 지워지게 될 걸

알고있지 눈물처럼 떨어지는 가을 오후 시간의 단풍 속에 묻혀

흩어지고 마는 걸

 

.......섭섭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어서 그런지 이 시가 오랜만에 생각났다. 2013년에 처음 읽고 참 좋아해서 네이버 블로그에 남겨두었던 시다. 단풍, 낙엽, 섭섭할 것도 없지 라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엄청나게 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는데, 마침 블로그에 포스팅해둔 게 있어 다행이었다. 섭섭할 것도 없지가 아니라 '섭섭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였구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하지만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이 예뻐서 기억에 담겨있었나보다.

 

섭섭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 앞의 말줄임표에 참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느낌이다. 점 하나 하나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을까? 감히 알 수 없다.

조금은 섭섭해 해도 괜찮지 않을까?

세상 살다 가면 그뿐이지만 특별할 것도 없지만, 조금은 섭섭해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더 주목받고 싶고 화려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저 그랬던 삶들. 별볼일 없는 삶이라도 충분하게 행복하지만 조금은 섭섭할 수도 있지 뭐. 아마 말줄임표에 담긴 말은.... '(조금 섭섭해해도 괜찮지만 굳이) 섭섭하게 생각할 것도 없지'가 아니었을까?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해

앙상한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날 때, 가을에 물든 단풍이 떨어질 때 두 번 밖에 주목받지 못하는 단풍 나무도-

살아가면서 탄생과 죽음 두 번 밖에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들도-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하다. 

이 시가 좋은 이유는 연민보다 담담함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냥 그러려니.. 길가에 핀 풀꽃 쳐다보듯, 세상을 바라보는 담담함이 때로 더 위로가 된다.

 

힘들다고 징징거릴 때 '힘내!' 하며 온갖 파이팅을 외치는 것보다 '망하면 뭐 어때 시발'이 더 위로가 되는 것처럼. 때로는 담담한 시선과 '너의 마음을 차마 다 헤아릴 수 없음'에 차마 힘내라고 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