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각의 단편

류시화 -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별의먼지 2021. 11. 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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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류시화

시월의 빛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 짓
첫눈 속에 파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그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여기, 거기, 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봐
이 모든 것들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요즘 멘탈이 조금 흔들린다. 마음이 쿵할 때가 자주 있다. 때로는 살아가면서 몇 번 찾아오지 않는 강렬한 감정이 소중하지만 흐려져 가기도  한다. 마치 수능 언어영역 비문학에 나올 것 같은 뻔한 사랑 시지만, Classic is the best!

올해 첫눈이 이미 어딘가에 흩날렸을 거란 생각을 하면 조금 아득해진다.

얼마 전 봤던 유튜브에서 한 강사가 했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돈을 어떻게 보는 지를 보면 그 사람의 돈을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다'고. 정말 맞는 말 같아. 돈을 벌기 위해 요즘 투자와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짬날 때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가끔씩 그런 시간과 생각이 나를 압도할 때가 있다. 돈에 잡아먹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는 슬픈 사랑에 관한 시를 읽고나서 문득 왜 돈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의 평범한 오후인가보다. 

어쩌면 이런 소중한 감정이 부질 없게 느껴져서 그랬을 수도 있고.

미래를 약속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미래에 대한 많은 약속을 한다. 결혼에 대한 약속을 조금이라도 해달라는 내게 전 남자친구는 말했다. 이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가 '미래에 대한 걸 어떻게 약속하느냐'고. 그만큼 약속이 부질없다. 

 

앞으로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이기에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게 아닐까? 난 그래서 결혼이 이런 약속에 대한 표현의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임경선이 에세이에서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보고 너무 가슴이 와 닿았다.

 

모든 것은 영혼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진심을 최대한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최대의 표현이 '결혼'이라는 그런 거였는데, 정말로 그렇다. 여전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인지 알쏭달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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