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각의 단편

마음의 연약지반

별의먼지 2022. 5. 24.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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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약지반

며칠 전 문득 마음을 스쳐지나간 생각을 적어보려한다. 조금 된 생각들이라 언어로 잘 다 표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냥 혼자 일기장이나 스마트폰 메모장에서 적어두지만, 그냥 오늘은 왠지 키보드 탕탕 타이핑을 좀 해보고 싶다.

연약지반의 사전적 의미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속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연약지반' 표지판이 더러 눈에 띈다. 다른 곳보다 지반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그 위를 지나갈 때는 조금 더 조심해야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도 이렇게 연약지반이 있다. 한겨울 땅땅하게 얼어붙은 호수에도 어느 지점은 조금 설렁해서 깨지기도 하듯이.

 

나의 연약 지반을 아는 것은 관계에서 중요하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건드려지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아는 것은 가족, 친구, 애인과 같은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예상치 못한 땅의 무너짐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연약지반이 어디인지 모른다면, 소중한 사람이 자칫 그곳 위를 걸어갈 때 반사적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신경질적인 반응은 여러 가지 방어 기제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겠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아프지 않은 척 하거나, 상대방 탓을 하거나, 그냥 울어버리거나, 화를 내거나 등등. 영문을 모르는 상대방이 받을 상처는 덤. 스스로 마음 속을 산책하다가 어느 여린 부분을 발견했을 때, 흙이 무너져내릴까봐 무서워서 살얼음 걷듯 근처만 맴돌기만 하면 정작 알맹이는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한 번은 아파야 한다.

그 가녀린, 작은 흔들림에도 금세 흙이 무너져 내리는 그곳을 알기 위해선, 결국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한 번은 아파야 한다. 연약지반 위를 딛고, 걸어서, 무너지는 순간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나면 고속도로 표지판처럼 나도 스스로 내 마음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곳은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 주의할 것!" 그리하여 소중한 사람에게 기꺼이 마음의 상처를 내보일 수 있는 용기가 조금은 생기기도 한다.

이제 그곳을 잘 다듬어줄 차례다.

내 마음의 연약지반을 발견하고, 이름표를 붙여주었다면 이제 흙을 조금씩 채워서 단단하게 만들어줄 차례다. 연약지반의 종류에 따라 이런 작업은 필요할 수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차피 100% 완벽하게 모든 연약지반을 채우기는 힘든 일이라 시도는 해보는 게 낫다. 그 작업은 사랑을 채워주는 느낌이 드는 상대방이 아닌, 오롯이 내가 해야 할 작업이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고,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한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마음챙김(요가, 명상, 독서)과 운동이다. 나를 매우 잘 아는 지인들의 통찰력도 큰 보탬이 되어준다.

 

그렇게 꾸준히 채워나가다보면, '자유'가 찾아온다.

최근에 읽은 '상처받지 않는 영혼'에서는 마음을 항상 열어두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저 관찰하고 놓아보내는 것. 감정과 나를 동일시 하지 않는 것(실제로 감정은 내가 아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바라보는 것이 나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 이런 일종의 수행을 하다보면 해탈을 느끼고 어느 상황에서도 평온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아직 그런 단계까지는 가보질 못했고, 무슨 느낌인지 조차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연습하다보면, 어느날은 놓아보냄으로서 오히려 채워지는 단단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하고 싶다면,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나의 연약지반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의 모양새를 알고, 그런 나를 인정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어쩌면 상대의 연약지반도 보듬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애초에 우리는 서로의 연약지반을 만지락거리며 사는 걸지도.

쓰다보니 문득 든 생각인데 이렇게 항상 자신을 성찰하고 살아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려나 싶다.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 뽀시락대면서 가시에 서로 찔리기도 하고, 또 기꺼이 찔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게 삶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 삶도 사실은, 나쁘지 않은 인생같다. 더 돌아가는 길이겠지만, 사서 고생하는 길이겠지만, 결국에 가시의 끝은 세월에 깎여 뭉툭해지기 마련이지 않을까. 가시를 애초에 함께 뽑아낼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너무나 이상적이겠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같다. 그래도 고슴도치끼리 가까이 몸 부벼대며 아프다고 서로 찡찡거려도 어떻게든 덜 아픈(?) 방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도 사랑은, 사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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