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6. 10:42ㆍ춤추는 감자의 이야기🎈/일상
1호선 출근길 단상
매일같은 출근길인에도 오늘은 유난히 진이 빠졌다. 난 항상 비교적 넓은 노약자석 공간에 서서 50분 남짓한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낸다. 오늘은 어떤 할아버지가 비집고 열차를 타며 '요즘 젊은 사람들 다 이상하다'며 큰 소리를 냈고, 파란당을 욕하며 '전두환같은 사람이 나와서 말 안듣는 애들은 다 어디 보내버려야 한다'고 했다. 서울역에서는 어떤 남자가 '그만 밀라고, 좀!'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흔하디 흔한, 매일같이 반복되는 출근길 지하철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노약자 좌석 한 곳이 비어있는줄, 출입문 앞에 낑겨있는 사람들이 알 재간이 어디 있을까? 그 할아버지는 비켜주지 않는다며 젊은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는 대신, '자리가 한 곳 있어서 가려하니 힘들더라도 좀 비켜달라, 고맙다.'라고는 할 수 없는 거였을까?
지겹고, 힘이 빠지는 아침이었다. 수 년 간 매일같이 세 시간 남짓을 지하철에서 보내는 내 일상이 가여웠다.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지 않아도 왠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아침들이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약간의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데 감사하는 게 정말 맞는걸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만 더 있으면 이사가니까 더 나아지겠지. 하지만 반복되는 힘든 일상이 나의 정신 건강을 지탱해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나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할 힘이 없기에, 내일도 그 내일도 개미처럼 1호선에 몸을 싣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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