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메리지 블루, 그리고 손톱깎이

별의먼지 2024. 2. 1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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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3개월 남짓 앞두고 괜히 싱숭생숭한 날들이 많아졌다. 날 것의 내밀한 감정들을 가족과 지인들이 볼 수 있는 공개 블로그에 다 내보이기는 쉽지 않아 아쉽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은 유난히 그랬다. 꼭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 하루 종일 있으면 별별 생각들이 다 드는 듯 하다. 코맹맹이 소리가 여전히 나면서도, 시끄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른 오후, 손톱깎이를 찾으러 집 곳곳을 둘러보았다. 유난히 손톱이 깎고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엄청나게 긴 것도 아닌데 거슬렸다.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질 않았다. 내가 평소 손톱깎이를 보관하는 통에도, 늘 항상 모든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는 테이블에도, 가끔 화장실에서 손톱을 깎으면 나도 몰래 두고왔던 변기 위 선반, 화장대 위까지... 평소 물건을 두는 곳이라는 곳은 다 찾아봤는데도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너무 손톱이 깎고싶어서 쿠팡에서 새 손톱깎이를 주문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밀려온 결혼을 앞두고 싱숭생숭한 마음에 허우적거렸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 인도편 마지막 화를 보면서 괜히 차분해지고 무언가 인생에 대한 감사함이 조금 밀려왔다. 반찬을 평소보다 더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고, 바로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생각에 잠겼다. 순수한 마음이 가득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나니 괜히 마음이 정갈해졌다. 결혼할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곱씹기도 했다. 모자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모자란 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욕심이 많고 계산적인 내게는 상대방의 단점만 늘 크게 보였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딱히 없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더 그 말이 와닿았다. 함께 생활을 같이 하는 룸메이트이자, 룸메이트보다 많이 진한 사이. 생존을 함께하는 동반자와 하는 결혼 생활은 분명 로맨스보다는 눈물 어린 감정이 더 스며들 게 뻔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오르는대로 샤워 물과 함께 흘려보내다보니 그냥 뭔가 모르게 감사함이 커졌다.

 

그때였다. 손톱깎이를 발견한 건...! 

 

변기 위 선반 위 내가 아까 한참을 둘러봤던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다른 물건에 가려 시야가 가린 것도 아니었다. 왜 아까는 이곳을 몇 번이나 보고도 대체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아까 찾을 때는 여기를 보면서도 속으로 그랬다. '꿉꿉한 화장실에 손톱깎이 두는 거 싫어하는데, 내가 여기 두었을 리가 없어!' 그 마음이 내 시야를 방해했던 걸까? 간사하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기도 전,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 쪼그려 앉아 손톱을 깎았다. 

시원했다.

 

문제의 손톱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