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가꾸기/마음 튼튼

심리상담 일기 - 첫만남

별의먼지 2022. 10. 1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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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일기 - 첫만남


심리상담을 받기로 결심하고 추석 상여금을 따로 빼두었다. 역시 집에서 가까운 게 최고이지 싶어서 집과 멀지 않은 곳에 느낌이 괜찮은 곳이 있어 선택했다. 물론 검증된 자격증을 가진 분으로 찾아보았다.

내가 선택한 곳은 상담사 이력은 물론 상담소 블로그에서 상담사 분들이 직접 일문일답 형식으로 올려두신 글이 선택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첫만남 전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


첫 상담 이전에는 개인 정보(가족 사항 포함), 상담 계기, 심리적 어려움과 내가 생각하는 원인, 상담을 통해 바라는 점 등을 자세하게 기입하는 설문지를 미리 작성해야 한다.

내면 탐구하면 또 나지. 평소 내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일에 익숙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없이 쭉쭉 잘 써나갔다. 써놓고보니 참 빽빽한 게 꼭 열심히 한 과제를 제출하는 대학생이 된 느낌도 들더라. 마음 한 구석에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도 이런 나를 알아보시겠지?
다른 사람보다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는
내담자니까 그만큼 주목해주시겠지?
마음 공부 좀 한 게 티가 나려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마음의 목소리는 무의식 중에 나온 것이어서 크게 귀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사 선생님과의 첫 만남 이후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사실은, 의외로, 아주 큰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묻는 질문엔, 대부분 ‘모르겠어요…’


나도 놀랐다. 내가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대답도 잘 못하고 어버버할 줄은. 그렇게 빽빽하고 상세하게 내 마음을 적어놓고, 막상 상담사를 마주한 첫만남은 조금 멘붕에 가까웠다. 선생님께선 많은 질문을 하셨는데 난 거의 모르겠다고 답했다. 대화는 겉돌았고, 나는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으며,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못했고, 오래되서 기억이 안난다고 자주 말했고, 수치스러웠고, 부끄러웠으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었고, 심지어 얼굴도 빨개졌다. 의외였다. 난 그 누구보다도 내 마음 속 상처를 정돈해서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니 그게 잘 안됐다. 불편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원래 마음은 매끄럽지 않고, 그걸 풀어내는 과정 역시 매끄럽지 않다고 오히려 혼란스러워하고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렇게 열심히 설문지를 써준 사람은 내가 거의 탑 쓰리라는 말도 함께.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그냥, 직관적으로 알았다.

나는 아직 만나지도 못한 상담사 선생님께 인정받고 잘 보이고 싶어했구나.


그때 주마등처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일면식도 없고 업무로 만난 사람들에게 굳이 인정받고 싶어 애쓰던 나의 모습이. 과제 발표를 할 때도 내용의 내실보다는 겉으로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지에 더 고민했던 시간.. 문득 괴로워하고 고민이 많았던 많은 순간들이 지금도 계속 떠오른다. 사회 생활이 길게 이어지면서 많이 나아진 부분이지만 새삼 그냥, 알았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도 이미 눈치채셨구나.

전문가의 통찰은 다르다


과거 몇 번 심리상담을 받아보았지만, 학교학생상담센터와 석사 수련생 무료 상담이 전부였다. 이번처럼 자격과 경력을 갖춘 심리상담 전문가를 만난 건 처음이었는데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통찰력이 느껴졌다.

특히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을 알게된다던지, 지금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나의 감정과 태도 역시 꽤 힌트가 되는구나 느꼈던 점이 그랬다.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를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 많았다. 예를 들어 상담을 통해 얻고 싶은 걸 여쭤보았을 때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 같아요?”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미성숙한 부분이 나아지는 거….? 잘 모르겠어요” 하고 얼버무렸다. 그래도 진짜 미성숙한 사람은 자기가 부족하거나 미성숙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의 과거 연애를 털어놓으며 내가 얼마나 망나니(?)같았고 미성숙하고 아기 같았는지를 열심히 설명해드렸더니 하신 말씀^^

나를 돌아보게 한 ‘그’ 질문


무엇보다 첫 상담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두드렸던 질문은 바로 이거였다.

어떤 점이 고마웠다고 느껴졌나요?
왜 더 받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항상 받기만을 바라고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더 많은 걸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도 내가 더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해준 고마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얘기를 잠시 꺼냈다.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내 마음과 시간, 돈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물론 책임감이 없는 상대였던지라 나와는 함께할 수 없었고 의외로 다 쏟아부은 탓인지 오히려 아픔이나 미련은 크지 않았다고.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좋아하겠지?가 아니라 그냥 내가 오히려 받는 게 더 많고 더 고마워서 뭘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냥 다 모든 것을 주었다고.

그리고 저 질문을 하셨다. 뭐가 그렇게 고마움을 느꼈냐고. 약간 말문이 막혔다. 구체적으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포인트였다. 좀 고민하다 대답했다. “예쁜 말투와 배려심이 좋았던 것 같아요…음.. 같이 있으면 좋고…?“ 벌써 며칠 된 일이라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로 자신감없이 대답했다.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내가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아… 그제서야 알았다. 그리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어떤 일이 생각났다. 서로 안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곱창집에서 소주 한 잔하다가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에 눈물이 터져버린 일이. (물론 그 당시 타이밍이 이전 연애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던 시기여서 더 그랬던 것도 한 몫했던 듯) 난 상대방을 그 자체로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던 상대방에게 빠져있던 것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만약 상대가 그러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어땠을까? 한 번 고민해 볼만하다.

동시에 내가 참 꼬시기 쉬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속삭여주는 것만으로도 난 왠지 홀라당 넘어가버릴, 그런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

상담이란 ‘거울’ 같은 것


내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듯 상담 역시 거울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거울로 들여다 본 나의 모습은 어떨까. 부디 얼룩진 거울이 아닌 깨끗한 거울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함께하기를.

첫만남을 마치며…


첫 상담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예정된 시간인 50분 보다 더 오래 진행되었다. 완벽에 가까운 설문지를 작성했는데 막상 발표를 시키니 더듬거리는 시간은 계속 되었고, 방어 기제가 제대로 발동되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힘든 얘기를 하면서도 웃으면서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시니 다음에는 좀 더 편하기 아픔을 내보일 수 있을까.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던 무의식을 벗어나면 정말 내가 원하는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상담사의 이야기가 마음에 참 많이 와닿았다.

애착관계에 대한 설명도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셨고, 역시 부모님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에게 마음의 문을 닫기로 결심했던 이야기를 더 하게될 것 같은데 당시 감정이 어땠는지 다음 상담 전까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