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가꾸기/마음 튼튼

나는 어쩌다 나를 모르게 되었을까

별의먼지 2021. 9.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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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나를 모르게 되었을까

나는 이제 막 서른을 지났다. 30년이나 살았는데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나는 어쩌다 나를 모르게 되었을까?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를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20대 초반까지가 그랬다.

이유는..

어릴 때부터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많이 던졌고 그 와중에서 나름의 해답을 얻었던 것들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된 고등학생 시절에는 하루 종일 세상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글을 썼다. 그 시절 내가 주로 생각했던 주제들은...

사람은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사람들은 왜 열심히 살아야 할까?

나는 왜 좋은 대학에 가야할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때는 나름의 해답을 찾았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뻔한 거 였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 '좋은 대학을 가야 추후 나의 가능성이 더 열릴 수 있다는 것', '나 역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런 것들... 이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은 그때 썼던 일기장을 들춰보면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그냥 중2병 걸린 꼬마의 개똥철학같은 것에 가까웠다. 

저런 생각을 계속 하다보면 나의 심연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나의 모습이라고 굳게 믿었다. 

삶에 대한 이유를 찾았으므로, 그게 곧 나의 에고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23살이 되었을 때 그 믿음이 와장창 무너져내렸다.

내가 알고 있던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였다.

그때는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였는데 공황이 찾아왔다. 이 얘기는 좀 더 나중에 풀기로 하고, 천조국의 자유로움에 날뛰다가 스무해 동안 억압했던 감정이 폭발한건데, 이때 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때 상담을 받았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의 한 수'였다. 피하지 않고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게 된 첫걸음을 떼었고 지금도 그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나를 알게되는 데 역시 연애만한 건 없다..는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봐서...나의 생각)

나는 결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있었고 그게 나를 꽤 오랜시간 힘들게했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 지금부터 알아가면 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 괜찮다'라는 것이다. 조금씩 알아가면 된다. 그리고 이 여정에는 사실 끝이 없다. 죽을 때까지 그저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는 그런 일인데, 나를 안다는 게. 그리고 사실 나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 기질도 있지만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말랑말랑한 부분들도 있다. 

나를 이루고 있는 부분은....

1. 과거 일정한 패턴을 반복했던 나의 모습

2. 만들어 가고 싶은 나의 미래의 모습

이렇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나를 알아간다고 하면 1번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나도 분명 존재한다.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면 지금부터 알아가면 된다.

나 알기의 여정은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별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랑스 출신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와 닿는다. 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보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타인의 욕망 = 사회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잣대이다. 흔히 말하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다니고, 좋은 사람 만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잘사는, 모두가 '평범하다'고 말하는 그 욕망.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명예로운 일을 하고 싶다' '조건보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기'와 같은 이런 모든 욕망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쨌든 나는 결혼적령기의 30대 초반 여성이고, 결혼에 매우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결혼'을 예로 들어 설명하려 한다. 이분법적으로 나눌 순 없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배우자 조건을 아래와 같이 둘로 구분해 보자.

1. 외모, 학벌, 집안 등 조건을 보고 결혼한다.

2. 조건보다는 사랑, 성품을 보고 결혼한다.

1번의 경우는 주변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결혼은 현실이야!'라며 사랑보다는 조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그 욕망이 '나의 욕망'이라면 상관없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므로, 1번과 2번 중에도 정답은 없으며 1번과 2번사이의 수많은 다른 선택지도 존재한다. 모두 정답은 없다.

다만 그게 정말 '나의 욕망'이냐는 물음은 차원이 조금 다르다. 나의 선택은 '남들 다 그렇게 하니까', '이게 현실이니까', '그래야 잘 살 수 있으니까' 와 같은 이유에서는 안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이 사회가 내게 어떤 무언의 압박을 하든 나의 선택은 '내가 그걸 진정으로 원하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부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첫걸음이다.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할 작업이기도 하다. 물론 나 역시 현재진행형.

천천히 알아가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중에 '밀라논나'라는 분이 계시다. 연배가 지극하시지만 깨어있는 사고와 마인드로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분이다. 그 분이 자주 하시는 말 중에 '나 자신과 연애하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는 이제 막 나 자신과의 연애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사귀기 전 썸탈때가 가장 설레고 생각이 많듯, 이 순간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즐기자. 호감가는 상대방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느낌으로.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