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비정전과 이용채 시인의 돌아보면 언제나 혼자였다

2021. 9. 27. 06:00춤추는 감자의 이야기🎈/생각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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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비정전과 이용채 시인의 돌아보면 언제나 혼자였다

 

외국어를 좋아하지만 중국어는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첨밀밀을 보고 홍콩 영화 특유의 매력에 반해 처음으로 중국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첨밀밀에 이어 인생 두 번째 홍콩 영화, 아비정전을 보았다. 아비정전을 보고나니 내가 좋아하는 시 하나가 생각났다.

돌아보면 언제나 혼자였다

 

이용채

 

돌아보면 언제나 혼자였다
나를 사랑한다고 다가오는 사람에게선
내가 물러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서면
그가 물러났다

나에게서 물러선 그에게 다시 다가서면
그가 부담스러워 나를 피했고
내가 물러섰는데도 다가오는 이는
내가 피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 아름다웠던 것을
내겐 늘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이보다
내 곁에 있고 싶은 이가 필요했던 것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지지 않고
나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만이
자꾸 만나지는 어이없는 삶
그러기에 나는 언제나 섬일 수 밖에

돌아보면 늘 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섬이 왜 우는지 아무도 몰랐고
섬이 왜 술잔을 자꾸 드는지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다

파도는 오늘도
절벽의 가슴에 부딪혀 온다


 

이 시는 거의 10년 전에 알게된 시인데도 아직까지도 가끔 읽으면 마음이 절절해진다. 무슨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썼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아려온다. 어긋나는 타이밍과 야속한 시간들은 우리가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Spoiler Alert!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Days of being wild

아비정전의 영어 제목은 "Days of being wild". 영화를 이렇게 몇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니, 정말 이 제목 그대로 방황하는 청춘들의 공허함이 잘 묻어나온다. 영화는 시종일관 우울하지만 그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영화는 두 번 봤는데, 개인적으로 두 번째 볼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다만 공감이 되지 않는 감정선도 있어서 첨밀밀을 봤을 때만큼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영화에서 좋았던 장면.

아비정전 왕가위 감독은 <화양연화>, <중경삼림>, <열혈남아> 등 한번쯤 들어본 홍콩 수작을 만든 감독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첨밀밀에서 여 주인공으로 출연한 '장만옥'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는데, 아비정전에서도 등장해 내심 반가웠다.

 

배우 장국영은 하도 이름을 많이 들어봤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다. 그렇게 잘생긴 얼굴인진 잘 모르겠으나 매력은 확실히 있었다. 

 

발이 없는 새

 

영화 내내 발이 없는 새 이야기가 나온다. 평생 날아다니다가 땅에 내려올 때가 바로 죽는 날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마지막에 그는 새가 이미 죽어있어서 날 수 없다고 했다. 자유롭고 싶었으나 성장 과정에서의 결핍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참 전형적인 '매력적인 회피형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한 1분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살다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짧았지만 마음 한 켠에 오래 머무는 순간들. 그런 기억은 언제 떠올려도 생생하다. 그날의 빛, 감촉, 공기의 질감이 함께 느껴진다.

 

내게도 '영원한 1분'의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래지지만, 예전만큼 아리진 않지만.. 그런 기억이 날 살아가게 하던 때가 있었는데.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