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1. 15:33ㆍ춤추는 감자의 이야기🎈/생각의 단편
최금녀 - 별 사
얼마전 퇴근길 서울역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마음에 와닿은 시 한 편을 알게되어 블로그에도 적어본다.
별 사
최금녀
커피 잔이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아끼던 것
그는 깨지면서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벌겋게 충혈 된 안개꽃 무늬들
책상다리의 살점을 저며 내고
내 손가락에서도 피가 흘렀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서로 다른 세상의
낯선 기호가 되고 말았다
아끼던 것들은 깨지는 순간에
그처럼 얼굴을 바꾸는구나
순한 이별은 없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정말 없을까?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연인 간의 이별을 얘기할 때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들 말한다. 나도 꼭 그렇게만 믿었는데 살다보니(30년 남짓한 인생이지만), 아름다운 이별도 때로는 있더라. 순도 100%의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성숙한 어른의 이별을 겪어보니 '헤어짐이 이럴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시인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매번 든다.
'순한 이별은 없다' 이런 구절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까. 소설과 시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내가 시를 좋아하기도 하는 이유는, 시는 짧은 한 문장으로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거창한 서사와 줄거리와 감정선없이도 맥락없이 어떤 한 문장이 때로는 내 마음에 콕 박히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나도 감수성 돋는 20대 초반에는 제법 글을 자주쓰곤 했다. 지금 읽어보면 '와, 내가 이때 이런 표현을 썼다고?' 감탄할 그런 문장을 이제 내게 만들어 낼 힘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시인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날 것의 그 감정들을, 사람들이 너무 하고 싶지만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것들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해는 '언어의 마술사'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리잔이 깨지는 사소한 일상의 모습에서 격렬한 정서를 알아채고 표현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참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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