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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의 단편 13

1호선 출근길 단상

1호선 출근길 단상 매일같은 출근길인에도 오늘은 유난히 진이 빠졌다. 난 항상 비교적 넓은 노약자석 공간에 서서 50분 남짓한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낸다. 오늘은 어떤 할아버지가 비집고 열차를 타며 '요즘 젊은 사람들 다 이상하다'며 큰 소리를 냈고, 파란당을 욕하며 '전두환같은 사람이 나와서 말 안듣는 애들은 다 어디 보내버려야 한다'고 했다. 서울역에서는 어떤 남자가 '그만 밀라고, 좀!'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흔하디 흔한, 매일같이 반복되는 출근길 지하철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노약자 좌석 한 곳이 비어있는줄, 출입문 앞에 낑겨있는 사람들이 알 재간이 어디 있을까? 그 할아버지는 비켜주지 않는다며 젊은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는 대신, '자리가 한 곳 있어서 가려하니 힘들더라도 좀 비켜달라, 고맙..

태양의 서커스 뉴 알레그리아를 보고 - 어떻게 사는 삶이 맞는걸까?

태양의 서커스 뉴 알레그리아를 보고 태양의서커스 - 뉴 알레그리아 평점 8.6 기간 2022.10.20(목)~2023.01.01(일) 장소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 출연 - 평소에 불효녀라 부모님 효도 선물로 연말 공연을 준비했다. 12/22(목) 저녁 7:30 공연을 보고 왔다.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는 다른 공연과 달리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서 신기하더라. 동영상 촬영은 금지된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뛰고 날아다니는 화려한 곡예만 있겠지 뭐 싶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정말 만족스러웠다. 부모님도 좋아하셔서 뿌듯했지만, 서커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단순한 묘기 공연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음악 세션을 담당하는 단원들이 직접 노래, 드럼, 아코디언, 첼로 등 각종 악기 ..

함박눈

함박눈 눈이 펑펑 내리고 사무실은 조용하다. 눈 앞의 트리가 참 반짝이는구나.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가 지겨우면서도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이런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데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같은 풍경, 비슷하면서 다른 설렘 벌써 같은 회사에 다닌지가 5년이 넘어간다. 매년 겨울 똑같은 창 밖으로 보이는 똑같은 눈오는 풍경이 이상하게 매번 조금 설렌다. 아직 눈이 오면 설레는 걸 보니 조금은 내게도 순수함이 남아있구나 싶기도 하다. 도시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인 친구가 보내준 눈오는 풍경은 내가 있는 빌딩 숲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운동장에 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 신난 아이들의 발자국이 귀여웠다. 같은 시간 같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인데도 주변 풍경에 따라 모습이..

마음의 연약지반

마음의 연약지반 며칠 전 문득 마음을 스쳐지나간 생각을 적어보려한다. 조금 된 생각들이라 언어로 잘 다 표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냥 혼자 일기장이나 스마트폰 메모장에서 적어두지만, 그냥 오늘은 왠지 키보드 탕탕 타이핑을 좀 해보고 싶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연약지반' 표지판이 더러 눈에 띈다. 다른 곳보다 지반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그 위를 지나갈 때는 조금 더 조심해야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도 이렇게 연약지반이 있다. 한겨울 땅땅하게 얼어붙은 호수에도 어느 지점은 조금 설렁해서 깨지기도 하듯이. 나의 연약 지반을 아는 것은 관계에서 중요하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건드려지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아는 것은 가족, 친구, 애인과 같은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

최금녀 - 별 사

최금녀 - 별 사 얼마전 퇴근길 서울역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마음에 와닿은 시 한 편을 알게되어 블로그에도 적어본다. 별 사 최금녀 커피 잔이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아끼던 것 그는 깨지면서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벌겋게 충혈 된 안개꽃 무늬들 책상다리의 살점을 저며 내고 내 손가락에서도 피가 흘렀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서로 다른 세상의 낯선 기호가 되고 말았다 아끼던 것들은 깨지는 순간에 그처럼 얼굴을 바꾸는구나 순한 이별은 없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정말 없을까?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연인 간의 이별을 얘기할 때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들 말한다. 나도 꼭 그렇게만 믿었는데 살다보니(30년 남짓한 인생이지만), 아름다운 이별도 때로는 있더라. 순도 100%의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

도종환 - 꽃잎

도종환 - 꽃잎 우연히 구글 이메일 카테고리를 뒤져보다가 2012년 자동 동기화된 흔적들을 발견했다. 20대 초반 내가 좋아했던 시들 중 하나가 눈에 띄어 가져왔다. 꽃잎 도종환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다 피었다 저 혼자 지는 오늘 흙에 누운 저 꽃잎 때문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시작도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 아득하여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시는 길지 않은 단어에 여러 마음들을 꾹꾹 눌러담은 것 같다. 소설이 인간 군상을 풀어냈다면 시는 몇 안되는 단어들로 인간 군상을 눌러 남은 느낌이랄까? 마치 시골가면 할머니가 ..

정호승 - 키스에 대한 책임

정호승 - 키스에 대한 책임 키스에 대한 책임 정호승 키스를 하고 돌아서서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너의 눈물과 죽음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빌딩과 빌딩 사이로 낡은 초승달이 떠 있는 골목길 밤은 초승달은 책임지고 있다 초승달은 새벽을 책임지고 있다 시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연인과 입맞춤을 한 뒤 이 시를 썼을까? 겨울 공기가 차다. 입맞춤이란 단어가 참 좋다. 입과 입을 맞대는 일. 마음과 마음을 맞대는 일도 입맞춤처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윈터링 오늘 새로운 단어를 알게되었다. 겨울나기, 일명 윈터링(Wintering)이라고 하는데 최근 나온 라는 책에서 작가 캐서린 메이가 표현한 단어다. 인생에 있어 겨울은 누구..

류시화 -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류시화 -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류시화 시월의 빛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 짓 첫눈 속에 파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그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여기, 거기, 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봐 이 모든 것들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요즘 멘탈이 조금 흔들린다. 마음이 쿵할 때가 자주 있다. 때로는 살아가면서 몇 번 찾아오지 않는 강렬한 감정이 소중하지..

서덕준 - 섬

서덕준 - 섬 섬 서덕준 섬 하나 없는 바다에 홀로 출렁이는 것이 삶인 줄 알았고 장미의 가시가 꽃잎인 줄로만 알고 살았던 그대야 홀로 얼마나 바닷물이 차가웠니 그래 그 욱신거리는 삶은 또 얼마나 삐걱거렸니 그대의 바다에 조그만 섬이 뿌리를 내리나니 힘겨웠던 그대의 닻을 잠시 쉬게 해 섬 전체가 장미로 물드는 계절이 오면 그대는 가시가 아니라 사정없이 붉은 꽃잎이었음을 알게 해 이 시를 읽으면 내가 좋아하는 가을방학-아이보리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평생 외로웠던 것 같은 기분이야 스물 아홉 해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렇기만 했던 건 아니지만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골목을 나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걸어가 가끔 스스로도 믿지 않는 말을 해 나도 모르게 그러고 나면 난 늘 부끄럽고 미안해, 참 이상하지 다들..

도종환 - 시간의 단풍

도종환 - 시간의 단풍 시간의 단풍 도종환 한 해에 두 번 꽃 피는 아침 단풍 지는 저녁 두 번밖에 주목받지 못하는 나무 많지 그 나무가 남긴 몇 개의 열매 여름날의 그늘도 그리 크게 기억하지 않지만 그들끼리 손잡고 도심 한 켠 푸르름으로 채우고 섰거나 숲의 한구석이 되어 있는 나무 많지 말없이 이 세상 한 모퉁이를 지키다 가는 나무들 많지 살면서 꽃 피던 짧은 날과 쓸쓸히 세상을 등지던 그 며칠밖에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 바쁘다고 말하지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장례식장 문을 나서며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말하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벌판에 미안함도 면목 없음도 묻어두고 잠시 지는 잎을 바라보지 그 기억도 곧 지워지게 될 걸 알고있지 눈물처럼 떨어지는 가을 오후 시간의 단풍 속에 묻혀 흩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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